등록일 2023.03.20
홍순범(전 코이카 부산 사무소장)
‘아세안’이라는 개념은 그동안 학자나 관련 관계자가 아니면‘동남아시아 국가들’정도로만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 10년 전후로 아세안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국내에서 개최된 세 차례의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2009, 2014, 2019)와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2019)는 아세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행사 개최도시인 제주(2009), 부산(2014, 2019)에서의 관심도는 매우 컸다.
또한, 아세안은 지난 정부의 신남방 정책을 필두로 상생발전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로서 급격히 주목받기 시작했다. 새로 출범한 우리정부는 지난해 캄보디아에서 개최된「2022 아세안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아세안 정상회의, 아세안+3,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등 아세안 관련 다자 정상회의에 참석하며 對 아세안 협력에 대한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對 아세안 협력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외교관계에서 전략적 공조를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부분 대화상대국(1989), 완전 대화상대국(1991), 포괄적 협력 동반자 관계(2004), 전략적 동반자 관계(2010)를 순차적으로 수립했고, 아세안 대화관계 수립 35주년인 2024년에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아세안과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아세안 대화상대국과 맺는 최고 단계의 파트너쉽이다.
우리는 왜 아세안에 대해 더욱 주목하고 있는가? 몇 가지 대표적인 이유는 먼저, 외교적으로 아세안은 회원국 모두 남북한 동시 수교국으로 한반도 이슈의 중요 파트너이다. 또한, 아세안은 인적교류 및 경제적인 면에서 한국의 제1위 방문, 제2위 교역, 제3위 투자 대상지역(2021 기준)이다. 무엇보다도 아세안은 한국의 중요한 개발협력(ODA) 파트너이기도 하다. 한국의 27개 ODA 중점협력국 중 아세안은 6개국(CLMV+인도네시아, 필리핀)이 포함되어있고 우리나라 전체 ODA의 약 29%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정부는 한국의 개발협력(ODA) 전략과 아세안 국가들의 개발정책 및 수요에 기초하여 교통, 물, 보건․위생, 교육, 환경보호, 에너지 등의 중점협력 분야를 선정해 개발협력사업(ODA)을 추진하고 있다. 개발협력(ODA) 분야는 우리정부의 對 아세안 협력전략으로 정치, 경제, 안보 등에서 상호 공조와 협력을 위해 적극 활용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아세안과의 실질적 협력 강화를 위한 재정 기반으로 3개 협력 기금도 운영해왔다. 2022년 현재, 한-아세안 협력기금(AKCF, ASEAN-ROK Cooperation Fund, 1990)은 연간 1,600만불을 아세안 사무국에 기탁해 운영 중이다. 아세안 10개국을 대상으로 각종 교육, 훈련, 교류, 협력사업 등을 시행하고 있다. 한-메콩 협력기금(MKCF, Mekong-ROK Cooperation Fund, 2012)은 연간 500만불을 메콩연구소에 기탁, 메콩 5개국(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태국)의 개발 격차완화 및 연계성 증진과 한-메콩 간 협력을 강화하는 데 쓰이고 있다. 한-해양동남아 협력기금(BKCF, BIMP-EAGA-ROK Cooperation Fund, 2021)은 가장 최근에 조성된 기금으로 4개 회원국의 환경 분야 개발에 대한 공통된 수요를 반영해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를 기탁처로 지정, 연간 300만불의 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환경, 관광, 연계성(교통, 무역, 투자, ICT, 에너지 인프라 등), 농수산 협력사업에 활용되고 있다. 이 기금들은 향후 5년에 걸쳐 현재의 2배 규모로 대폭 증액될 예정이다.
*GGGI는 개발도상국의 저탄소 녹색성장 전략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에 설립된 국제기구.(2010.6월 비영리 재단 → 2012년 6월 국제기구로 공인)
한편, 아세안 내에는 IMS-GT(1989), IMT-GT(1993), GMS(1992), BIMP-EAGA(1994) 등 다양한 소지역 협력체가 있다. 그 중 BIMP-EAGA는 아시아금융위기(1997)로 한동안 침체기를 겪기도 했으나 최근 우리나라와 본격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한국은 2021년부터 한-해양동남아 협력기금(BKCF, BIMP-EAGA-ROK Cooperation Fund)을 조성해 BIMP-EAGA와의 협력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동향을 보면 한(韓)-BIMP-EAGA 고위관리회의(SOM, 2021, 2022)를 통해 협력기금(BKCF)의 증액, 환경(기후변화대응 및 신재생에너지 분야 포함), 연계성, 관광 등 중점협력분야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협력기금(BKCF)의 1차 사업공모에서는‘민다나오 카카오 농가 돕기 프로젝트’와 ‘재생에너지 인증 시스템 구축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가 선정되었고, 2차 사업공모에서는 태양광발전, 상수도개선, 생태관광 등 주로 환경, 관광분야에서 총 8개 제안사업이 선정되었다.
협력기금(BKCF)의 운용에 대한 현황을 보면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첫째, 공모에 의한 사업선정이다. 한국과 BIMP-EAGA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 대학, 연구소, NGOs를 대상으로 한 공모를 통해 사업을 선정해 기금을 지원한다. 둘째, 타 아세안 관련 기금에 비해 기금규모가 적다. 시작단계의 기금이라 현재는 300만불 수준이고, 한-아세안협력기금(AKCF, 1600만불), 한-메콩 협력기금(MKCF, 500만불)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산이 적다. 셋째, 사업기간이 단기(1~2년)이고, 예산대비 사업선정 수가 많다. 기금운용 실행기관인 GGGI의 사업비 지원 규정에 따르면, 지원액은 사업제안 기간에 따라 1년은 5만불~30만불, 2년은 10만불~최대30만불이다. 다국 사업인 경우는 국가 당 최대 20만불까지 지원이 가능하다고 되어있다. 요약하면, 1개 사업 당 연간 지원금은 최소 5만불~10만불(약6천5백~1억3천), 최대 30만불(약3억9천) 정도다. 이를 통해 최근 2차 사업제안 공모에서 선정된 8개 사업의 사업규모도 짐작해 볼 수 있다.
한(韓)-BIMP-EAGA 간 효과적 파트너쉽과 협력을 위해서는 협력기금(BKCF)에 대한 전략적, 효율적 운용 방안과 관련,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지 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해당 지원액 수준에서 BIMP-EAGA 內 타 해외 공여기관의 ODA사업, 우리정부의 기존 對 아세안 유․무상 ODA 사업, 한-아세안 협력기금(AKCF) 등과 차별화된 전략이 있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초기 단계라 아직은 명확한 중장기 전략이나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 점은 다소 아쉽지만 기금 확대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있어 기대가 된다.
향후 협력기금(BKCF)이 발전하고 성장하기위해서는 기존의 형태를 공고히 하되 다음과 같은 변화와 노력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첫째, 해양․수산분야 ODA를 강화해야 한다. 해양 동남아 협력에 중점을 둔 기금에 걸맞게 수산 양식, 가공, 저장, 수산협동조합 등 해양수산 분야를 특화산업으로 발굴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 기금운용 형태를 고려하면 매우 파급력이 크고 BIMP-EAGA의 비전에도 부합하는 전략 분야가 될 것이다. 둘째, 공모사업에 의한 의존을 탈피해야 한다. 공모사업에 전적으로 의존하거나 무리하게 많은 사업을 선정하는데 얽매이다보면 협력기금 본래의 전략적 방향성을 상실할 수 도 있다. 또한 효율성이나 파급력이 저조해 질수도 있어 이를 경계해야한다. 필요시에는 공모사업 외 별도의
‘전략․기획사업’을 추진할 필요도 있다. 셋째, 회원국의 균형 있는 참여를 이끌어야 한다. 해양동남아 4개국이 공모사업을 제안하는데 있어 편중되지 않고 균형있는 참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조정의 노력도 필요하다.
아직은 한국과 BIMP-EAGA 간 협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나 인지도가 충분하지 않다. 회원국 경제성장을 위한 현지 지원사업 뿐만 아니라 학술행사와 온라인 홍보 등을 통해 국내에서의 인식제고 활동도 필요하다. 그리고 BIMP-EAGA와의 교류협력 확대를 통해 BIMP-EAGA 대한 지역적 이해와 면밀한 후속 연구가 이어진다면 한-해양동남아 협력기금(BKCF, BIMP-EAGA-ROK Cooperation Fund)이 BIMP-EAGA 발전과 한-아세안이 상생․협력의 파트너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하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