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2023.02.21
세종연구소 최윤정 인도태평양연구센터장
2022년 12월 28일에 한국 정부는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였다.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하 인태전략)은 “포용, 신뢰, 호혜”의 3가지 협력의 원칙과 9개 중점 추진 과제를 제시하였다. 인태전략은 한국 정부가 글로벌 중추국가의 비전하에 처음으로 제시한 지역전략이다. 성공적으로 지역전략을 발표한 한국 정부가 풀어야 할 다음 과제는 전략의 취지에 맞는 이행일 것이다.
한국의 인태전략은 특별히 아세안을 대상으로는 하는 ‘한-아세안 연대구상(KASI)’을 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실천할 수 있는 한-아세안 협력의 플랫폼을 이미 상당 부분 갖추고 있다. 한국은 1989년 아세안의 대화상대국으로 수교를 시작한데 이어 메콩강 경제권(Greater Mekong Subregion, GMS)에 속한 아세안 대륙부 국가들과는 2011년부터 시작한 파트너십을 2020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2021년에는 아세안 동쪽에 위치한 4개 해양국가(브루나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의 저개발지역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BIMP-EAGA 1) 와도 파트너십을 구축함으로써 아세안의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는 소지역 차원의 협력 체계를 완비해놓았다. 이처럼 제도적 기반을 다진 아세안과의 협력은 한국의 인태전략이 가장 빠르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결실을 기대할 수 있는 지점이다.
아세안과의 협력은 또한 다른 파트너 국가들과의 협력으로 확대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도 각별한 중요성을 지닌다. 아세안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호주, 인도 및 EU와 유럽의 각 국이 발표한 인태전략에서 핵심적인 파트너로 지목되었으며,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은 지역협력의 원칙으로 거론된다. 한국의 인태전략이 아세안에 피봇(pivot)을 두었을 때 여타 파트너와의 협력도 용이해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특히 빠른 성장이 기대되는 BIMP-EAGA와의 협력을 한국의 아세안과의 파트너십과 인태전략 실천의 본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BIMP-EAGA는 BIMP 4개국 면적의 62.4%를 차지하지만 인구는 19.3%, 노동가능인구는 18.5%로 더욱 작다. 하지만 무역에 대한 기여도는 BIMP 중 24.5%이고, 코로나 기간 중에도 유독 해외직접투자가 지속적으로 증가세를 거듭하였다. 2) 국경간 이동이 막히면서 2021년에는 오로지 국내 관광(99.8%)에만 의존할 정도로 관광 산업이 타격을 받았지만 2023년 해외관광객 유입으로 관광산업이 회복되면 경제성장에 한층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더욱이 2023년은 BIMP-EAGA의 의장국인 인도네시아가 아세안의 의장국을 수임하는 해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코로나로 지연되었던 수도 이전 프로젝트도 재개하였는데, BIMP-EAGA 지역인 보르네오섬 동칼리만탄의 Kutai Kartanegara와 North Penajam Paser로 수도를 이전하면 BIMP-EAGA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말레이시아, 필리핀, 브루나이 정부도 이 지역 개발에 더 많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아세안 내에서도 새로운 성장의 중핵으로 부상하고 있는 BIMP-EAGA의 성장을 돕는 것은 한국 입장에서 새로운 생산기지와 시장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투자 유인으로 역내 진출을 도모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저지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인태전략에서 BIMP-EAGA와의 협력을 어떻게 추진하는 것이 좋을까? 먼저 BIMP-EAGA의 성장성을 실현하는 “호혜” 원칙의 관점에서 접근해보자. 아세안은 아세안 헌장 21조 2항에서 특정 이슈에 관련된 회원국들이 참여하는 소지역 협의체의 설립 근거를 마련해두었다. BIMP-EAGA는 아세안 헌장의 정신에 충실한 소지역 협의체로서 연계성(Connectivity), 식량(Food Basket), 관광, 환경, 사회‧문화‧교육과 같은 분야를 중심으로 현재 동남아 4개 회원국이 개발파트너(중국, 일본, 호주, 한국)와 협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슈를 중심으로 협력의 내용, 형식, 참여국을 정할 수 있는 탄력성을 보유하고 있기에 BIMP-EAGA는 필요한 분야를 중심으로 상호호혜적인 소다자 협력을 도모하기에 매우 적절한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호혜” 원칙을 상기하며 한국은 인태전략의 9개 중점 추진 과제 중에서 BIMP-EAGA의 2025 비전 실현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표> 한국 인도-태평양전략과 BIMP-EAGA 협력 분야 매칭의 예
출처: 한국의 인태전략 및 BIMP-EAGA 비전 2025 자료집을 토대로 저자 작성
협력의 잠재력이 높은 분야 중 하나가 해양의 연계성과 안보의 증진이다. 연계성은 아세안에서도 최상위에 두고 있는 협력 의제이며, 도서 지역이 많은 BIMP-EAGA 회원국들이 다른 지역과 교류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연계성 구축이 더욱 절실하다. BIMP-EAGA 회원국들은 특히 한국이 해양 연계성 사업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국이 패권적 의도가 없는 신뢰할 수 있는 중견국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에너지와 자원들이 말라카 해협과 남중국해 등 동남아 해역을 통과해야 하는 지역 해양안보의 이해당사자”라는 이유로 환영하는 입장이다.
이는 공고한 상호 신뢰에 기반한 협력 관계를 추구하는 “신뢰” 원칙과 연결된다. 해양 연계성은 궁극적으로 해양안보가 뒷받침 되어야하며, 안보 협력에서 국가간의 신뢰는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해상교통로를 둘러싼 미⸱중간 해양패권 경쟁이 과열됨에 따라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해양 동남아 국가의 안보적 중요성 또한 증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조코 위도도(Joko Widodo) 대통령도 2019년 BIMP-EAGA 정상회담에서 BIMP-EAGA가 납치, 해적 행위와 같은 해양 안보 관점을 보다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나아갈 것을 당부한 바 있다. 3)
한국은 인태전략에서 한국이 해양국가라는 점과 이 지역 해양의 자유, 평화, 번영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BIMP-EAGA는 한국이 해양의 안보와 번영을 추구하기 위하여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 필요 없이 이미 구축한 플랫폼을 이용하여 협력을 서서히 실천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장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규범과 규칙에 기반한 인태 지역 질서를 해양안보 차원에서 수립해나가는 효과적인 출발이 될 수 있다. 한국이 BIMP-EAGA를 한국 해양 협력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이 지역에서 한국의 역할에서 차별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한국 해양 협력이 실체를 갖고 진일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아가 BIMP-EAGA와 소다자 협력이 본궤도에 오르면 지역 및 조직의 측면에서 확장성을 추구할 수 있는 개방형 협력의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 때 확장성은 역내에서는 동남아와의 중층적 협력 기제로 활용하는 한편 지역의 주요 대화상대국이 참여하는 협의체와 유기적인 협력을 모색함을 의미한다. 즉, 개방적 지역주의를 적용하여 다른 개발파트너인 일본, 호주, 중국과도 삼자협력을 시험해 보고, 나아가 해양 관련 국가 및 협의체와의 협력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 이처럼 한국 인태전략의 핵심 원칙인 “포용”을 구현하는데 있어 BIMP-EAGA는 모범적인 시범 케이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끝.
1)브루나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 동아세안 성장지대(Brunei Darussalam -Indonesia-Malaysia-Philippines East ASEAN Growth Area)는 1994년 출범한 이래 현재 정상급 회의를 개최하는 소지역 협의체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2)BIMP-EAGA에 대한 해외직접투자 유입액은 2019년 97억불, 2020년 128억불, 2021년 136억불로 매년 증가하였는데, 국내투자는 70억 달러 수준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BIMP-EAGA at a glance: A StatisticalInformation Brief 2022).